카라바조의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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카라바조의 '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'은 1593년 완성되었고 현재는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에 소장 되어 있습니다.
정물도 인물도 아닌 그 경계가 흐릿한 이 그림은 빛을 이용한 명암 대비와 인물의 표정과 근육의 움직임, 과일의 신선도 등의 섬세한 표현력은 카라바조를 매섭게 비판하는 평론가들도 그림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.
> 카라바조 그림의 특징
<명암의 대비>
카라바조는 명암 대비의 창시자로 불립니다. 그의 그림은 한 줄기 빛이 마치 무대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. 고도의 명암을 대비 시켜 극적인 효과를 내는 기법을 테니브리즘이라고 합니다. 이탈리아어로 어두운, 신비로움을 의미하고 카라바조는 이 기법을 적극 활용했습니다. 그림 속 미소년과 과일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듯 환하고 배경은 어둡게 처리되었습니다.
훗날 램브란트가 이 기법을 이어받아 야경이라는 명작을 탄생시킵니다.
<사실적인 표현>
15~16세기 플랑드르의 브뤼해, 젠트 등의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들에 의해 형성된 플랑드르파의 화풍은 그림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. 카라바조는 이 화풍을 전수 받아 섬세한 인물 표현과 풍경, 정물을 그렸습니다. 카라바조는 정물화는 사진을 찍은 듯 사실적으로 잘 그렸습니다.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이탈리아 회폐 리라에 카라바조의 정물화가 새겨져 있을 만큼 그의 실력은 최고였습니다.
'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' 속 과일은 마치 실제의 모습과 같습니다. 털이 보송한 복숭아, 벌레 먹은 사과, 하얀 분이 남아 있는 포도 송이 묘사는 카라바조의 섬세한 붓터치를 가늠케 합니다.
> 그림 속 미소년의 정체
카라바조의 그림에는 정물도 많지만 유독 미소년이 자주 등장합니다. 그가 미소년만 그린 이유는 동성을 좋아했고 그 자신도 동성애자였습니다. 하지만 그가 개인적인 취향때문에 미소년을 모델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닙니다.
추기경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는 여러 화가들을 후원했고 카라바조도 후원을 했습니다.추기경은 미소년을 아주 좋아했고 카라바조의 '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'은 그의 취향을 저격한 작품이었습니다. 그는 아예 카라바조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미소년의 그림을 그리게 합니다.
추기경의 집에서는 미소년들이 화려한 연주회와 파티가 열렸고 카라바조는 그 광경을 그림으로 그립니다. .추기경과 카라바조는 미소년을 좋아한다는 공통점과 후원인과 화가로 최고의 파트너였습니다. 카라바조의 난폭한 성격과 폭행,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면서도 화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최고의 권력자 추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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